동네 한 바퀴

머릿속에 많은 것들이 자리 잡아 서로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을 때면, 문을 나서 동네를 무작정 걷곤 한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때로는 나를 돌아보곤 한다. 나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유난히 무거운 생각을 많이 쓴 것 같아 이번에는 가볍게 주저리주저리 쓰고 싶다.
베트남 레스토랑
집과 역을 오갈 때 지날 수밖에 없는 베트남 레스토랑이 하나 있다. 이 동네에 처음 왔을 무렵, 요리하기 귀찮을 때면 꽤 많이 갔었는데 요즘은 잘 안 간다. 웬만하면 직접 해 먹는 게 익숙하기도 하고, 또 가끔 갈 때마다 맛의 편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식당에는 동남아시아 외모의 청년 하나가 있다. 매일 상주하며 이리저리 지시를 하는 걸 보니 매니저급인 것 같다. 처음 밥을 먹었을 때였다. 어디에서 왔냐고 물어왔고 한국에서 왔다고 했다. 그는 매장 내에 음악을 Blackpink 노래로 바꿔 틀어줬다. 식사 후에 결제를 하려 했는데 신용카드가 안 된단다. 나는 현금이 없다고 하자, 그는 약간의 고민 후에 페이팔도 된다고 했다. 그건 사장님의 페이팔이었다. 사장에게 전화해서 돈이 들어왔는지 확인 후에 나에게 완료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생각해보면 꽤나 웃기다. 현금도 없고, 카드도 안 되고. 페이팔이라니. 21세기 디지털 유목민의 구원투수가 되어준 셈이다. 하지만 진짜 구원은 그의 배려였을 것이다. 당황한 외국인 손님을 위해 온갖 결제 수단을 동원해주는 친절한 마음씨 말이다. 물론 밥값을 받아내야만 하는 게 당연했겠지만 말이다.
요즘에도 그 앞을 지나갈 때면 통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턱을 치켜들며 ‘끄덕’ 하는 인사를 한다. 그 짧은 인사에는 묘한 정이 담겨 있다. 말은 안 해도 이 동네 얼마 없는 동양인 남자라서 동질감이 드는 게 확실하다. 서로의 사연을 모르면서도 공유하는 이방인끼리의 은밀한 연대감. 아니면 다음에 밥을 먹으러 가면 또다시 페이팔로 결제해도 된다는 암묵적인 합의랄까.
개똥을 조심해야 한다
나의 동네에서 무심코 걷다가는 신발에게 미안해질 수 있다. 반려견 친화적인 나라답게 어디에서나 개를 볼 수 있다. 따라서 곳곳에 지뢰가 있다. 개똥을 조심해야 한다.
어느 날 신발장으로부터 풍겨오는 고약한 냄새에 나는 코를 찌푸렸다. 알고 보니 나의 살로몬 신발 밑창에는 말라 비틀어진 고동색의 흉측한 어떤 것이 달라붙어 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화가 나기보다는 허탈했다고 해야 할까. 아무리 조심스럽게 걸어도 피할 수 없는 것들이 있구나 싶어서. 게다가 하필 비싸게 주고 산 트레킹화를. 개는 죄가 없다. 생리적 욕구를 해결했을 뿐인데 내가 그걸 밟고 다녔으니. 그래도 좀 억울하긴 했다. 개의 주인은 책임이 있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때로 이런 예상치 못한 만남의 연속이다. 발밑의 지뢰 같은 것들 말이다. 삶도 그렇다. 아무리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겨도 익숙한 길에서 가끔은 불쾌한 것을 밟게 되는 그런 것이다. 다행히 신발은 물로 씻어내면 그만이다만.
Späti
슈패티. 독일어를 번역하면 대충 ‘늦게까지 여는 편의점’이라는 의미다. 여기에는 서울 마냥 24시 편의점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내가 머무는 곳 근방 슈패티의 존재는 유사시 절대적으로 유용하다.
동네 슈패티A. 역설적으로 이곳은 밤 10-11시면 닫는다. 이름값을 못하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주인 아저씨 두 분이 시간을 정해 교대를 하는 것 같은데, 얼굴이 너무나도 닮은 걸 보니 아무래도 형제인 것 같다. 안경의 유무 차이만 있을 뿐 누가 봐도 혈육이다. 아주 가끔 두 형제가 교대하는 순간을 목격할 때가 있었다. 서로 무뚝뚝하게 있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난다. 표현에 서툰 남자들의 전형 같달까. 하지만 그 무심한 듯한 손길 속에 형제애가 숨어 있다는 걸 나는 안다. 함께 작은 가게를 지켜나가는 끈끈한 연대감 말이다.
반면 반 블록 정도 더 가면 또 다른 슈패티B가 있다. 여기는 슈패티라는 이름에 걸맞게 밤 늦게 새벽 2-3시까지도 여는 곳이다. 여름이 오자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등 수익구조의 다변화를 공격적으로 시도하는 곳이다. 아침부터 낮에는 아주머니가, 저녁부터 밤에는 아저씨가 가게를 지킨다.
하루는 늦게까지 음주를 즐긴 후 집에 들어가는 길에 너무나도 갈증이 났다. 파워에이드 한 병을 집어들고 계산대로 갔다. 2.50유로였다. 내 주머니에는 2유로짜리 동전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잠깐만을 외치고 더 저렴한 이온음료가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Bru, wie viel hast du?”
주인아저씨는 내가 얼마가 있는지 되물어왔다. 현금 2유로밖에 없다고 하자 그냥 그거만 내라고 했다. 그냥 깎아주는 것인가 아니면 외상인가. 여긴 한국 동네 슈퍼가 아닌데. 고작 50센트였지만 돈 계산에 칼같이 엄격한 독일에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와 파워에이드를 들이키며 집으로 향했다.
나는 의리의 한국인. 은혜를 입었으면 갚는 게 인지상정이다. 다음 날 저녁 다시 그곳에 갔다. 아저씨는 전날과 같이 자리를 지키며 내게 Bru 인사를 해왔다. 어제 일 고마웠다고 1유로를 건넸다. 괜찮다는 아저씨에게 어제 당신이 나를 살렸다고 하자,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그는 내가 어디서 왔냐는 걸 물었고 난 한국에서 왔다고 했다. 자기는 튀르키예 출신인데, 어린 딸이 K-Pop Demon Hunters를 미친듯이 좋아한다고 했다. 이런 게 김구 선생님이 말씀하신 문화승리일 것이다.
아무튼 50센트로 따뜻함과 좋은 기억을 얻었다. 몇 발자국 더 멀어도, 앞으로 슈패티B를 자주 갈 것 같다.
베이컨 에그드롭과 카푸치노
밀집된 주거지 속 카페 불모지인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카페 하나가 있다. 항상 그렇듯이 베이컨에그드롭과 카푸치노를 시킨다. 주말 브런치타임에 가면 앉을 자리 찾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다.
이곳은 작은 성역이다. 똑같은 메뉴를 시키는 나를 알아보는 직원의 눈빛, 익숙한 향기, 창가 자리에서 바라보는 거리의 풍경. 변하지 않는 것들이 주는 안도감이란.
가끔은 새로운 메뉴를 시도해볼까 하다가도 결국 같은 것을 주문한다. 변화가 두렵다기보다는 단지 이 작은 의식이 주는 평안함을 놓치고 싶지 않을 뿐이다. 베이컨 에그드롭의 짭조름한 맛과 카푸치노의 부드러운 거품. 이 조합이 만들어내는 안정감은 어중간한 새로운 경험보다 값지다.
주말 점심, 자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약간의 우월감이 든다. 나는 이미 이 카페의 생리를 꿰고 있다는. 몇 시에 와야 자리가 있는지, 어느 테이블이 가장 편한지. 이런 소소한 전문성이 주는 뿌듯함이란.
아낌없이 주는 하우스마이스터
하우스마이스터. 건물 관리인을 뜻한다. 거주자를 위한 기본적인 관리와 컴플레인을 담당한다. 일반적으로 항상 상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집이 있는 건물은 일정 시간 평일 동안 매일 머문다.
계약서 날짜 첫날, 열쇠를 받기 위해 그를 찾아갔다. 마침 그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사무실에서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나를 보자 반갑게 어서 오라며 이미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고 서둘러 말했다. 나는 급할 건 없었기에 그가 가진 약간의 휴식시간을 뺏는 것 같아 미안했다. 담배 한 대 피고 천천히 해도 좋다고 시간을 줬다. 고맙다고 했다.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이 동네의 역사에 대해 일장연설을 듣고 그와 친해졌다. 같은 30대라며 주먹인사를 했다. 아주 사소한 문제라도 생기면 도와주겠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한 아시아 청년이 하우스마이스터를 찾아왔다. 자기 집이 2층인데 열쇠를 방에 놓고 나와서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해맑게 웃으며 배수관을 타고 올라가도 되는지 물으며 정글의 법칙에서 나무를 타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하우스마이스터는 배수관이 망가지면 너가 물어내야 한다고 했고, 이야기를 들은 그 청년은 멈췄다. 하우스마이스터는 사다리를 줄 테니 한번 잘 시도해보라는 말과 함께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 사이 그 청년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Key라는 이름을 가진 베트남 출신 대학생이었다. 저녁에 여자친구가 오는데, 들어갈 수 없어 준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Oh, Key lost key.”
나는 Made in Korea 아재 개그를 당당히 선사했다. 웃었다. 다행히도 먹혔다. 그 사이 하우스마이스터는 족히 4층까지는 올라갈 만한 큼지막한 사다리를 내어왔다. Key는 발코니에 펼쳐진 그의 화분들을 넘어 재빠르게 들어갔다. 추측건대, 그 식물들은 자기 주인의 가랑이를 보는 게 그날이 마지막이 아닐 것이다. 발코니로 안전하게 넘어간 그 녀석은 하우스마이스터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나에겐 또 보자며 해맑게 웃어왔다. 잠깐의 대화였지만 정말로 긍정적인 녀석이었다. 어디에 있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도 잘 살아갈 친구다.
그때의 상황을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열쇠를 두고 나와 혼란에 빠진 그에게 하우스마이스터는 천사 같은 존재였다. 발코니로 들어가는 그의 민첩함이란. 마치 도둑 같았지만 합법적인 침입이었으니 더욱 우스꽝스러웠다.
하우스마이스터는 내게 - 부디, 제발, 부탁하건대 spare key는 너의 가까운 동료나 친구에게 맡겨 - 라고 했다. 맞다. 꽤나 유용한 조언이다. 이방인에게 건네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삶의 지혜 같은 것이다. 낯선 곳에서 누군가 나를 조금이나마 걱정해준다는 느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하다.
그날 저녁 장을 보러 나가는 길에, 여자친구와 팔짱을 끼고 들어오는 Key를 우연히 마주쳤다. 하마터면 놓칠 뻔한 소중한 저녁시간이었으리라.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무언의 남자의 인사를 교환했다. 끄덕.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