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yuichi Sakamoto

Ryuichi Sakamoto

2024년 3월 28일 어제는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1주기였다. 멋드러진 뿔테와 백발을 가진 그는 피아노를 기반으로 수많은 음악을 남겼다. 바흐와 드뷔시의 결이 있지만, 동시에 영화음악 / 재즈 / 뉴에이지 / 힙합 / 민속음악 / 실험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울렀다. 그 중 영화음악으로 쓰인 그의 곡들을 나는 가장 좋아한다.


Merry Christmas Mr. Lawrence (1983)

이 곡은 너무나 유명해서 꼽지 않을 수 없다. 이 곡은 1983년 작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 Mr. Lawrence)》의 스코어였다. 나는 영화를 아직 보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98년 일본문화개방 이전에 제작된 영화이고, 일본 중심의 태평양전쟁을 다루는 탓에 그 이후에도 국민정서상 정식 개봉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곡을 중학교 때 좋아했던 여자애로부터 추천을 받아 처음 접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목에 헤드폰을 걸치고 다니는 힙합보이였지만, 클래식과 뉴에이지 장르 또한 좋아했기에 거부감 없이 들어봤던 것 같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싶을때 정말 많이 들었다. 언젠가 영화 속에서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Bibo No Aozora (美貌の靑空) (1995)

타이틀을 직역하면 Beautiful Blue Sky라는 뜻이다. 이 곡은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Alejandro Iñárritu) 감독의 영화 《바벨(Babel)》(2006)의 사운드트랙 중 하나로 쓰였다. 영화의 구성은 각기 다른 장소에서 옴니버스식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중 일본 에피소드에서 마지막 시퀀스를 장식할 때 이 곡이 깔린다. 

피아노 솔로 버전도 있지만, 위에 있는 첼로와 바이올린이 함께하는 3중주 라이브 버전이 훨씬 좋다. 피아노 솔로 버전은 고요하게 절제되어 있는데, 스트링 편곡된 버전은 잔잔하면서도 끊임없이 너울치는 작은 파도를 너무나도 잘 표현한다. 영상의 5:15 부터 시작되는 짧은 클라이막스는 정말 아름답다. 감정에 북받쳐 울 때, 가쁜 숨을 진정시키기도 헐떡이게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


The Revenant Main Theme (2015)

숨막힌다. 혹독함은 이미 충분히 깊었지만 더욱 더 극한의 심연으로 끌고 내려간다. 빛은 없고 절망뿐이다.

알레한드로 이냐리투 감독과 인연을 맺은 탓인지 영화 《레버넌트(The Revenant)》(2015)에서도 스코어를 맡았다. 물론 영화 속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가 대단했지만, 그를 둘러싼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이 음악 하나로 충분하다. 누군가가 몬태나주 미주리강 강가에 나를 던져놓고 이 음악을 떡하니 틀어준다면 디카프리오의 연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을 것만 같다.


Aqua (1998)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怪物)》(2023) 의 사운드트랙으로 쓰여 25년만에 다시 빛을 봤다. 영화 말미 아이들이 겪어왔던 치열한 성장드라마의 대미를 청각적으로 아름답게 장식한다. ‘물’이 가지고 있는 속성 - 고민과 걱정들을 잠식할 수 있으며, 막연한 쓸쓸함과 두려움도 느껴지지만, 역설적으로 이로부터 새로 시작할 수도 있다는 미래에 약속되지 않은 무언의 희망 - 을 느끼게 한다. 영화의 스토리, 시각적 연출, 그리고 배경음악 삼박자의 합이 정말 일품이다. 

Aqua 이외에도 이 영화에 쓰인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유작이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꼭 보길 추천한다.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운 영화에 아름다운 음악이다. 


“The world is full of sounds. We just don’t usually hear them as music.”
— Ryuichi Sakamoto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지만, 보편적인 감정 위에 때로는 디테일하게 어떤걸 건드리는 특별한 음악들이 있다. 한국, 일본, 중국 작곡가가 만든 음악을 들으면 그런 것이 종종 느껴진다. 역사적, 정치적으로는 서로를 미워해도 감성적인 면에서는 이 동아시아 3국만의 공통적인게 있나보다. 그래서 좀 더 익숙하고 편안하고 섬세하게 들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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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 Kwon Rhee

programmer + art enthusiast

Berlin,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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