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다 빠른 《파묘(Exhuma)》 Pre-final 후기

한국보다 빠른 《파묘(Exhuma)》 Pre-final 후기

베를린국제영화제. 올해로 74회를 맞았다. 매년 수 편의 한국 영화들이 초청을 받곤 한다. 마음 같아서는 한국 영화를 떠나, 출품된 모든 작품들을 보고 싶다. 모든 경쟁부문작들을 보고 ‘나만의 수상’ 같은 것도 해보고 싶다. 하지만 나에겐 여전히 시간과 돈의 제약이 있고, 전세계에서 오는 관객들 때문에 표를 구하기도 녹록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인은 누구인가? 수강신청과 티켓팅의 민족 아닌가? 노력과 행운이 뒤따랐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로 유명한 장재현 감독의 신작, 《파묘(Exhuma)》 이다.

《파묘(Exhuma)》는 풍수사와 무당, 장의사가 원 팀이 되어 의뢰인의 문제를 마주하는 상황에서 겪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류의 영화의 경우 하나의 배경을 가진 등장인물이 주축이 되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모두 각자의 매력을 유지하며 각자의 역할이 있다. 각기 다른 직업윤리를 가진 세 부류를 통해 스토리라인이 어떻게 전개될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서양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수한 직업이라는 점도 신선함을 준다. 실제로 모든 주인공들이 각자의 역할을 하며 유기적으로 스토리를 이끌어간다.

exhuma2
[사진1] 파묘 스틸컷

엑소시즘이나 샤머니즘, 주술, 초능력 등을 다루는 오컬트물을 나는 좋아한다. 그 이유는 마음을 쪼그라들게 만든 제한된 상태에서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단순히 1차원적으로 오감을 놀래키는데 목적을 두는 ‘귀신영화’와는 그 궤가 다르다. 사필귀정(事必歸正)과 권선징악(勸善懲惡) 따라 결국엔 정화될 것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에 보기좋게 퇴짜를 놓을 수 있는 장르라는 것 또한 매력포인트다. 물론 영화에 따라 해피엔딩도 될 수 있고 새드엔딩 일수도 있지만 말이다. 예로 《엑소시스트》(1973), 《유전》(2018), 《곡성》(2016) 을 꼽고 싶다. 적절한 편집점과 연출력은 몰입을 극한으로 이끌고 간다. 명작이다.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고차원적 몰입이 깨지는 조건이 하나 있는데, 바로 미스터리한 어떤 대상이 명확하게 드러날때다. 또한 그것이 여태까지 쌓아왔던 상상력을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더욱 아쉽다. 드러나지 않는 무형의 공포는 오컬트 장르 영화의 감상을 좌지우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 전개상 필연적으로 드러나야 한다면, 관객의 몰입을 깨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지점에서 영리하게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파묘》는 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다만 나의 기대가 너무 높았을 수 있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어색하게 느껴지는걸까

나는 한국사에 대해 지극히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관에 기반한 역사적인 내용은 영화를 구성하는 재료로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역사가 중심테마가 아닌 영화’의 주인공이 고고한 역사적 사명에 영향을 받아 행동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면 그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차라리 영화 속에서 설정된 각 인물의 확고한 직업윤리를 바탕으로 주인공이 스토리를 이끌어간다면 오히려 납득이 가는 방향성인 것 같다. 

마법천자문 타이틀
[사진2] 마법천자문

사주팔자를 한번이라도 봐봤다면 음양오행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잘은 모르지만 풍수사나 무당과도 실제로 관련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배경지식이 없다. 한편 영화에서 음양오행이라는 것을 통해 동양철학적인 요소를 가미하려 한 시도는 잘 느껴지나, 과연 이 지점이 관객들에게 개연성 있게 잘 먹힐지는 모르겠다. 내 입장에서는 다소 뜬금 없다고 느껴졌고, 그 방식도 아쉬웠다. 어린시절 읽곤 했던 만화 ‘마법천자문’이 연상되었다. 요즘 아이들도 마법천자문을 알까?

정리

높은 수준의 예술성을 예상한 관객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동양적(한국적) 요소가 담긴 오컬트 장르를 기대하는 일반 관객들과 서구권의 사람들에게는 상업영화로써 충분한 흥미를 끌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장재현 감독의 말에 따르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버전은 프리 파이널 (Pre-final) 버전이라고 한다. 최종 편집을 위한 타임라인이 영화제와 맞지 않았나보다. 다만, 추후 정식 개봉 후 상영되는 버전은 파이널버전이니, 내가 본 판에 비해 일부 수정되고 삭제 되지 않을까 싶다.

P.S.

영화와는 별개로, 상영 후 이뤄지는 감독과의 대화는 조금 더 내실이 있으면 좋겠다. 물론 시간과 공간적인 제약이 있는 곁들이 행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영화에 대한 즉각적인 피드백이 오갈 수 있고 창작자의 내심을 엿볼 수 있는 생생하고 유일한 창구이다. 

영화를 제작한 감독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거나 영화에 대한 감상과 사견을 드러낼 수 있다고 보지만, 그것이 주어진 질문시간의 8할을 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핵심을 찌르거나 생각해보지 못한 지점을 겨냥한 질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방대한 서론 끝에 결국 힘이 빠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질문하는 것이 훌륭하고, 세상에 나쁜 질문은 없다. 다만 좋은 질문이 모두에게 훌륭한 컨텐츠인건 사실이다.

What’s next

다음 주에는 대 감독 마틴 스코세이지를 만나러 간다. 작년 스티븐 스필버그에 이어, 2024 명예 황금곰상을 수상할 예정이라고 한다. 시상식 이후 홍콩영화 《무간도》(2002)를 리메이크한 《디파티드》(2006) 상영회가 있다. 감독과의 대화도 있다. 은퇴하실 때가 된 것 같기도 한데 아직도 열정이 넘친다. 나도 노년까지 그런 에너지를 가지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슬쩍 든다.

마음대로 세 줄 요약,,

  1. 《파묘(Exhuma)》는 예술성은 다소 아쉽지만, 상업영화로서 이목을 끌고 성공할 것 같다. ★★★☆ (3.5/5)
  2. 음양오행과 마법천자문
  3. 시간과 돈 제약 없이 영화 많이 보고 싶다.

출처

  • 사진1: 쇼박스
  • 사진2:https://ac-o.namu.la/20211014s2/1172a9a398da19c775ced3b4f143ce2d84a2ecbe2a546371b5a3d4702febb4b1.png?expires=1708314192&key=Skl3dJGIEfryw5bj_iLWog&type=orig
Share: Twitter Facebook
Tae Kwon Rhee's Picture

Tae Kwon Rhee

programmer + art enthusiast

Berlin, Germany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