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의 병

몸과 마음의 병

돌이켜보면 그것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나의 일과 인간관계 모두를 쉬어가는 결정을 한 것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별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자위하며 아직까지도 굳게 믿고있다. 오랜만에 먼저 나에게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고맙고 또 미안한 일이지만, 매번 같은 이야기를 도돌이표 해가며 설명하기가 싫었고 사실은 지금도 그렇다.

갑작스레 작지 않은 수술을 했다. 고향이 아닌 타지에서 수술이라는 이벤트를 겪는 것은 여간 쉬운게 아니다. 보살펴 줄 가족이 없는, 모국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몸에 칼이 닿을 것을 어찌 상상이나 했을까. 또 당시 베를린은 코로나로 인해 간병 목적인 보호자도 원내 출입이 안됐던 시기라 어쩔 수 없이 all by myself 였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오진으로 인해 두 번의 수술을 했다. 본의 아니게 나는 두 번 열리고 닫혀졌다.

흥미로운 점은, 곧 두번째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첫 번째 수술을 마치고서야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자초지종을 알린 대단한 위인이 나라는 것이다. 그걸 또 어머니 생신날 가족이 모여있던 자리에서 영상통화로 발표한 불효자가 여기 있다. 가족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고 또 감사하다. 

여하튼 없어지지 않는 5개의 불쾌한 칼자국이 남았지만, 물리적인 관점에서는 회복됐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사실 육체적으로 힘든 건 둘째치고 정신적인 영역에 미치는 영향은 감내하기 어려웠다. 어느 아무개 의사 왈, 장은 제 2의 뇌라고 했던가. 최근 연구에 따르면, 장의 건강상태가 정신적인 영역을 관장하는 전반적인 호르몬 대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이 검증되어 가고 있다. 그 가설은 정설에 가까움을 내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엄청난 양의 항생제로 인해 장건강은 좋을리가 만무했고 음식을 잘 먹지도 못하니 거기서 오는 작디 작은 행복감도 없었다. 세로토닌은 바닥을 치고 코티솔은 넘쳐 흘렀다. 각종 영양제부터 정신과약을 먹어도 별로 소용이 없었다.

사람들과의 연락을 일방적으로 끊었다. 불안정한 멘탈은 사회적 관계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원래도 나는 메신저나 social media를 잘 안하기도 했지만, 그 알람뜨는 그것이 너무나도 버겁고 힘들었다. 휴대폰이 울리면 숨이 막히고 토를 할 것만 같고 이런 것이 공황인가 생각도 들었다. 이기적이고 오만한 결정이지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나부터 살아야지 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독한 겨울 속에서 어느새 일년 반이 지났다. 

셀프로 나를 외부로부터 단절하는 동안, 이 시간은 내 주변과 사회적 인간 관계에 대해서 깊고 다양하게 고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내용은 새로운 글에 조만간 담아볼 예정이다.

다행히 육체적 정신적으로 아주 느리지만 천천히, 점점 많이 나아져 가고 있다. 요즘엔 대체로 긍정적인 생각도 많이 하고 뭐 그렇게 산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베를린의 겨울은 여전히 춥고도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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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 Kwon Rhee

programmer + art enthusiast

Berlin,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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